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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der and Affect Studies

활동

[후기] 2020년 11월 17일 젠더·어펙트스쿨 세미나 (박지원, 고다정)

젠더어펙트연구소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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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7일 젠더·어펙트스쿨 세미나 후기

박지원

 


지난 17일 젠더·어펙트연구소의 정례세미나에서는 “지역 문화예술과 젠더·어펙트”를 주제로

2020 부산비엔날레 출품작과 참여 작가, 행사 방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발제자인 박준훈은 이번 비엔날레를 지역, 지역적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전시, 문학, 시각 예술로 나누어 정리해주었고

다른 발제자인 신민희 또한 <‘명사’로서의 지역, ‘동사’로서의 지역>이라는 제목으로 비엔날레와 로컬리티에 대해 다뤄주었다.


이처럼 2020 부산비엔날레는 우선 ‘지역’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논의해볼 수 있는 행사였다.

세미나에서는 이번 전시와 관련해 지역을 해석하고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가 오갔다.

지역에 대한 표현이 지역 내부에서 생산되어 외부를 향하는 것이 옳은지, 지역 재현의 담당은 지역 작가가 해야 하는지,

지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들은 결국 ‘지역’이라는 의미나 표상이 한정되어서는 안 되며 내외부를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생산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편 2020 부산비엔날레는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라는 제목으로 작품집을 발간했는데,

두 발제자는 이 책에 담긴 작품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뤄주었다.

박준훈은 박솔뫼의 「매일 산책 연습」에서 최명환의 태도가 부산의 태도를 환기시킨다고 해석한다.

최명환을 통해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대한 모욕, 정권의 종북세력 몰이를 윤허한 것과 관련된 감정들,

반미 의식의 폭발 조짐을 알고도 이를 모른 척 했던 태도 등이 나타나며

그것이 종국에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덮인 것에 대한 의미화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발제자는 작가가 공식화된 기억 이면에 놓인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루기보다,

현재의 시점에서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를 재차 고민하는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김숨의 「초록은 슬프다」와 김언수의 「물개여관」은 민족의 역사라는 거대한 기억을 자극하지만

서술자들의 태도나 지역을 그려내는 시선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초록은 슬프다」는 전후 물건처럼 버려진 ‘위안부’ 여성들을 기억하는 ‘나’에 초점을 맞추고

「물개여관」은 베트남전에 참전해 돌아온 인물을 내세워 깡깡이 마을의 역사를 조명한다.

이에 대해 신민희는 「초록은 슬프다」에 나타나는 부산의 항구가 ‘귀환’의 장소로 의미화되었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자들의 기억과 공간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또 「물개여관」의 항구는 냉전의 바다라는 역사적 문맥을 갖고 있지만

‘허무함’으로 수렴되는 정조와 선원의 신체에 무의식적으로 자리한 여성의 신체를 통해,

‘깡깡이질’의 논의를 심화시키는 것인지, 또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토론자인 김대성은 이번 비엔날레의 작가 선정 및 작품 경향에 대해 논해주었다.

개별 작가들이 일회성 행사를 위한 작업이 아닌,

자신들의 기존 작품세계와의 연속성 속에서 부산이라는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고 평한다.

또한 지역을 왜곡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는 지역에 대한 특정 지식을 내세우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비판하는 습관화된 태도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러한 방식이 오히려 지역을 협소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논한다.

지역 이야기를 지역민들만의 것으로 삼고 ‘외부인’을 배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솔뫼의 「매일 산책 연습」은 작가가 지금까지 다루었던 부산에 대한 작품들 중에서도 손꼽히며,

특히 ‘용두산 아파트’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역사적인 장소로 재발견하는 것은 지역적인 것을 재고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급속히 ‘공모전화’되는 문화예술계가 한정된 주제로 지역을 다룸으로써

오히려 지역을 급속히 옛 것이 되게 하고 탈정치화된 공간으로 전락시키는 현실에서,

지역을 생각하고 재해석하는 단초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다정


‘여성-되기, 문화로 보기’를 주제로 한 이번 세미나는

김은주의 『여성-되기: 들뢰즈의 행동학과 페미니즘』과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보건교사와 긍정의 윤리학

발제자 강희정의 「정동적 젤리들」은 『보건교사 안은영』과 들뢰즈의 윤리학을 접목시켜 분석한 글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젤리는 어떠한 정체인지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일부 사람들만 볼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강희정은 이 젤리를 신체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젤리가 인간의 생각, 마음, 기분 등으로부터 생성되며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내재하는 신체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들뢰즈의 윤리학을 제시하여 안은영의 능력을 분석한다.


들뢰즈의 윤리학은 ‘형식적 보편타당성을 자율적으로 따르는 의무’나 ‘규칙을 준수하는 문제’가 아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행위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이원론적 사유에서 벗어나 ‘차이’를 ‘존재론적 역량을 지닌 힘’으로 규정하며 신체가 얼마나 그 힘을 발휘하여 변화할 수 있는지,

‘신체적 역능을 증강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강희정은 이러한 윤리적 관점으로 사람의 신체적 역능/능력을 약화시키는 젤리를 윤리에 반하는 존재(것)라고 설명한다.

또한 젤리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안은영은 들뢰즈의 신체개념과 윤리학을 발전시킨 브라이도티의 ‘긍정의 윤리학’, ‘보살핌’과 맞닿아있다.

안은영의 직업이 ‘보건교사’라는 점과 그가 ‘보살핌’의 최전선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통해 강희정은 안은영의 능력이 정동적이라고 보았다.

 

‘보건/교사’라는 노동과 위치의 정치학

강희정이 ‘젤리’들의 정동성과 그러한 ‘젤리의 흐름’을 보살피는 안은영의 능력에 주목한다면,

토론자 권영빈은 거기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을 ‘보건교사’로서의 ‘노동’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보보았다.

안은영은 비정규직/비교과/여성 교사라는 비가시적이면서도 문제적인 위치에 종속되어 있고,

불특정 다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정동체계의 ‘관리자’로 일한다.

이 소설은 관리자-노동자로서의 안은영과 사립고교재단의 계승자이자 ‘오너’의 위치에 있는 홍인표의 정동적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관계맺음의 형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성은 안은영이라는 여성 인물의 능력을 기존의 ‘돌봄’과 관련된 의미망으로 한정하기보다,

다양하게 주제화할 수 있는 논점들을 던져주는 실마리가 된다.

이와 관련해 세미나 참가자인 권두현은 안은영의 관심사가 학생 자체에 있기보다 ‘젤리’라는 관계성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안은영이 보건교사로 복무하는 정동체계와 안은영 스스로가 속한 정동체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고 논했다.

하지우는 안은영이 기존의 ‘노동’ 범주에 속해있지 않고 경계인의 위치에 있다고 보았으며,

박준훈은 안은영과 홍인표의 관계가 돌봄인과 돌봄사용자의 관계가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 돌봄노동의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았다.

또 다른 참가자인 지민은 드라마와의 비교를 통해 홍인표가 가진 장애에 대한 질문과,

안은영의 ‘돌봄’ 노동이 학교 밖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양상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브라이도티에 따르면 ‘위치의 정치’는

“권력과 함께하는 우리 자신의 함의를 끌어내는 쌍방향적 과정”(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역, 󰡔변신󰡕, 꿈꾼문고, 2020, 33쪽)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노동자로서의 안은영은 정동체계의 관리자이자 생산자이면서,

자신의 종속된 위치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관계성을 담지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안은영의 ‘돌봄’은 보다 다채로운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아래는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토대로 쓴 글입니다.

 

혐오와 ‘되기’의 실천

학교 사람들이 시종일관 혐오 발화를 내뿜는 순간 우리의 눈살은 저절로 찌푸려진다.

레즈비언을 더럽다고 말하며 장애인을 비웃지만, 이 모든 게 젤리에 의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란 걸 보여준다.

땀을 흘릴 정도로 기괴하게 웃는 혐오 발화자들의 민낯을 그대로 포착하는 장면은

어디에 비판을 두고 있는지 명백하게 보이는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를 혐오했다는 일부 논란이 나왔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나오는 혐오 발화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현실은 이것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상황들이 많다’라고 말한 이경미 감독의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혐오 발화의 대상자인 소수자의 위치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연출이 걸림돌이 되고 만다.

모두가 미쳐 있을 때 미치지 않은 사람은 바로 이것을 시청하는 ‘나’이다.

말에서 느껴지는 폭력과 고립감,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인 ‘나’는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이 곧 장면 자체가 혐오적이라 그렇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작품을 시청하는 '나'는 혐오를 받는 대상자의 위치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혐오하는 장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는 감독의 의도를 간과한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작품 안에서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작품을 넘어서 변화를 요구하는 일부의 지적은 하나의 실천이 이루어진 셈이다.

소수자의 위치를 간접적으로 느낀 ‘나’들은 이 같은 혐오 사회를 어떻게 개혁할지 요구한다.

소수자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할 것을 요청한 장면-감독의 연출 의도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지만-이 어느 정도 뜻하는 바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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