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for

Gender and Affect Studies

활동

[후기] 2020년 8월 27일 젠더·어펙트스쿨 세미나 (권영빈)

젠더어펙트연구소
2020-09-01
조회수 351


모이고 흩어지고 변용되는 (비/인간) 신체들


젠더·어펙트연구소의 하계 세미나 마지막 시간은

제인 베넷의 생동하는 물질(현실문화, 2020)과 주디스 버틀러의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창비, 2020)에 대한 논의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두 저작 모두 최근에 출판된 책들로, 신체들의 배치와 관계성에 대한 비교역사적 접근이라는 

구소의 새로운 연구 주제를 본격화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는 집회가 가진 수행적 힘에 대한 책입니다.

버틀러의 핵심 개념, 이론이라 할 수 있는 수행성과 취약성을 중심으로 ‘삶은 곧 신체’라는 그의 명제를 다시 한번 명확히 확인하게 해줍니다.

수행성, 즉 체현(embodyment)의 형태를 통해 기존의 규범들과 겨루거나 그것의 체계화된 지속에 균열을 가하는 것,

그리고 ‘정체성’이 아닌 ‘상태’를 의미하는 취약성을 통해 연합의 정치로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버틀러는 이론과 실제를 아우르는 사유를 펼쳐 보입니다.

레비나스와 아렌트를 경유에 도출되는 공거(共居)의 윤리는,

우리가 누군가 혹은 특정 집단을 혐오할 자유나 선택권을 마치 자유주의적 주체의 마땅한 권리(이른바, ‘표현의 자유’)로 주어져있다고 여기는 전제 자체가 어불성설임을 밝힙니다.

타자에 대한 윤리는 자아에 선행하며, 우리의 생명 자체가 타자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집회는 공공장소에 대한 점령이나 군중의 이동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헤픈 여자’라는 신체화된 낙인을 수행함으로써 저항하는 ‘슬럿 워크(slut-walks)’와,

신체적 자유와 정치 집단의 구성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바로 그 신체를 통한 정치를 수행하는 감옥 내 단식투쟁과 같은 사례들은

집회의 수행적 힘과 신체가 상호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어떤 ‘출현’ 자체를 의미화합니다.

이때 버틀러가 강조하는 것은, 집회로 상연되는 행동이 단 하나의 정치적 의미나 지향점으로 괄호쳐질 수 없다는 것,

단일한 하나의 행동에 순응하거나 단일한 요구로 환원되지 않는 방식으로,

수렴하는 동시에 또한 분기(分岐)하는 복수성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버틀러의 논의에서 재차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수행의 주체인 동시에 인프라(infra)인 신체에 대한 것일 듯합니다.

책에서 신체는 점령이라는 수행의 일부인 동시에 그러한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지기반입니다.

아울러 모이거나 가만히 있을 권력은 정부가 수여하거나 보호하는 권리에 선행하거나 초과하는 것으로,

버틀러의 이러한 사유는 장애학으로부터 온 통찰이기도 합니다. 

국 대상이면서도 인프라인 신체가 가진 이 과정적 힘은 정동(affect)에 대한 사유와 뗄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제인 베넷에 의하면, 이러한 신체란 인간 신체, 인간의 행위자성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라투르의 용어를 통해 이야기하는 ‘행위소’는 비/인간 행위의 원천이자, 차이를 만들어내고,

결과를 만들어내며, 사건의 과정을 전환시키는 응집력을 지닌 것입니다.

생기적 유물론으로서의 사물들의 행위소와 작용을 다루는 생동하는 물질은

인간과 물질을 존재론적으로 구분하고 위계를 부여해온 철학적 계보와 사유들을 비판하고

인간을 포함한 사물들 간의 상호작용, 의존성, 공동작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주쳐서 변용되는 상호 구성적 관계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이들 저작은 모두 정동적 사유와 실천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넷은 물질성을 정동과 동일시하기도 하고, 버틀러는 신체적 수행을 복수적인 것, 단언할 수 없는 것으로 말합니다.

마주침의 최전선으로서의 (비/인간) 신체와 그것이 촉발하는 정동적 관계성을 통해,

두 저작의 문제의식은 김은주의 ‘정동체’로서의 신체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정동의 용적(capacity)인 정동체로서의 신체는 단순한 물질성이나 유기적 구조에 의해 정의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연결된 신체들의 관계 구조로 공간을 개념화하는 동시에, 기술 매개적이고 환경 관계적인,

물리적이면서도 가상적인 ‘지리-신체(geo-body)’적 공간을 생성합니다.


그렇다면 사물-권력, 우연성-창발성 등의 생기론적 유물론의 주요 개념과 화두는

정치적 주체화와 실천의 문제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 남습니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과 같은 정치적 삶의 기반에서 보면,

베넷의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성의 지위를 격상”(58)한다는 관점은

마치 현실사회에서 구체적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인간에게서 빚어지는 갈등과 관계적 문제를 배제하고

그것을 사물에 대한 인식론으로 통합, 대체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렇다고 이들, ‘사물-권력’과 인간의 관계를 상호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인간중심주의’라는, 이제는 고정관념이 돼버린,

그러나 극히 떨치기 어려운 그 프레임을 중심으로 양쪽 입장을(으로) 환원해버리는 것은

베넷의 새로운 유물론이 가리키는 궁극적 지향점 대신에 가리키는 그 손가락을 두고 옥신각신 해버리는 논의로 흐르기 쉬울 듯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정동 연구가 개입할 지점과 역할이 있을 것 같습니다.


버틀러가 이야기한, 주체이자 대상이면서 인프라인 신체는, 베넷의 생기론을 통해 그 상호작용의 범위와 인과성이 확장되는 지점을 향합니다.

이들 모이고 흩어지고 변용되는 (비/인간) 신체들은 단순히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통합하는 차원이 아닌,

세계에 대한 인식 기반을 바꾸는 새로운 행위소로 접근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로서 현실 정치의 주체화나 정치 집단 구성의 문제 또한 배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것은 주체 구성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설명, 방법론에 대한 개발,

정동적 관계와 흐름을 추적하는 색다른 독해 방식이 본격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시 말해 김은주의 정동체로서의 신체, ‘지리-신체’ 개념으로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설명하고 분석할 수 있을까요?

이 신선한 개념으로부터 나아갈 수 있는 무궁한 지점들이 있다고 보입니다.


이로써 젠더·어펙트연구소가 진행한 여름 세미나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2020-2학기 세미나 또한 공백 없이 이어집니다!

9월 1일 화요일 오후 6시, 줌(zoom)을 통해 다시 연결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생동하는 물질에 대한 논의 또한 계속됩니다.


젠더·어펙트스쿨 3기 운영에 대한 내용과 함께, 세미나 접속 주소가 곧 공지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참고: 김은주, 「현장(location)의 정치와 페미니즘 주체화: 정동체(affect-capacity)로서 신체와 지리-신체(geo-body)적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33, 한국여성철학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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