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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der and Affect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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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로컬의 미래를 향한 부대낌 (김대성)

젠더어펙트연구소
2021-08-26
조회수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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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와 마을. 부산의 도시재생사업은 이 두 용어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며 증식하고 있다. 

에코, 델타, 메가, 스마트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미래 시티와 예술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펼친 마을 구축이 부산 곳곳을 종횡무진한다. 

광안대교를 타면 복잡한 부산 도심을 거치지 않고 초고층 빌딩과 국제적인 관광단지가 조성된 해운대까지 최단시간으로 도착할 수 있다. 

첨단 도시의 표상인 센텀시티와 마린시티는 사실상 광안대교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좋다. 

영도다리라 불렸던 영도대교는 원도심을 잇는 가교다. 

남포동과 영도는 거의 맞닿아 있지만 영도대교를 거치지 않고는 문화예술 마을에 진입할 수 없다. 

근래엔 항만 기능이 사라지는 북항에 거대 해상도시 건설 계획까지 추진되고 있다. 

기후위기로 도래할 해수면 상승에 대한 대안으로 모색된 해상신도시 계획인데,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도 불린다.


부산뿐만 아니라 ‘재생’이 필요한 전국의 어떤 지역에서든 이처럼 양립 불가능할 것 같은 다양한 도시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시민들은 지자체가 밀어붙이는 도시계획에 따라 삶의 동선을 협의하고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반강제적인 방식으로 생활 영역과 장소를 침탈당하곤 한다. 

막대한 자본을 기반으로 추진되는 광폭한 도시계획과 달리 눈에 띄지 않지만 

새로운 삶의 영역을 일구기 위해 일상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움직임 또한 존재한다. 

이 움직임은 저항의 몸짓이나 이념을 앞세운 대의를 따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지도 제작의 현장은 행정 구역으로 나뉜 표지판이나 지피에스(GPS) 정보만으론 진입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입말, 걸음, 이야기를 더듬으며 뒤쫓거나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부산의 오랜 입말에 따르면 영도는 “들어가는” 곳이고, 해운대는 “넘어가는” 곳이다. 

이런 입말 표현에는 서울-부산이라는 이항대립의 공간 스케일과는 다른 공간감각과 장소성의 역사가 담겨 있다. 

영도에 ‘들어가고’, 해운대로 ‘넘어가는’ 언어 체계는 부산 지역에서 오래 사용된 입말이지만 

어떤 연유로 안착되었는지 객관적 자료를 통해 확인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이런 말들은 무의식중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든 말이어서, 체계적이지 않을뿐더러 의미를 포착하고 개념화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이 말이 산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 장소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말하자면 사라진 과거는 사람들의 입말을 통해 가까스로 지금, 여기에 깜빡이며 나타나는 것이다. 

어원도 역사도 알지 못하지만 “해운대로 넘어가고”, “영도로 들어가는” 입말 속에서 

로컬의 역사는 (도시)재생의 명령하에 폐허로 방치된 시간의 연쇄를 깨버리고 다른 시간과 장소성을 지금 여기에 새긴다. 

이렇게 과거는 단지 재생되어야 할 지나간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을 앞당겨 현실화한 것이 된다.


미래 문화도시 계획을 위한 강력한 재개발 행정 드라이브가 걸린 영도구의 한 해안가 근처에서 

지난 5월 개최된 한 전시엔 사람들이 남긴 ‘기이한 걸음’이 새겨져 있다.

 ‘절영해안산책로’에서 3일 동안 열렸던 장소특정적 전시 ‘부유의 시간’은 봉래산 자락과 바다가 만나는 

동삼동 해안가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관객 주도하에 예술과 생태, 그리고 지역사를 재구성하고 체험해보는 

열린 형식의 예술 기획이다. 

저마다 동선을 짜고 그 길 위에서 큐아르(QR) 코드를 연결해 이야기를 들으며 주변을 관찰하고 걷다 보면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검게 그을린 장소와 해안가에 밀려온 쓰레기와 해안 생물들의 잔해를 손수 조합하는 작업장에 이르게 된다. 

참여자는 관람의 방식이 아닌 참여하고 또 전시에 관여함으로써 그곳에 있지만 

비가시화되었던 다종한 존재들이 맺고 있는 활력과 조우할 수 있는 일상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가령, 해안가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 더미가 영도 앞바다에 묘박 중인 선박에서 나온 것이라면 

영도의 고유한 풍경 중의 하나인 ‘바닷가에 홀로 떠 있는 선박의 불빛’은 

무엇보다 ‘해안가의 쓰레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절영해안산책로는 바다와 바람, 사람, 사물, 해안 쓰레기, 도시 계획, 냄새, 기분 등의 매개로 구성된 장소인데, 

이는 ‘부산’이나 ‘영도’라는 보편적 정체성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지역 곳곳의 현장에서 체감하고 느끼고 배우는 것들은 내내 들리거나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들릴 뿐이며 잠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져버리곤 한다. 

힘이 미약하거나 연약해서가 아니라 주류적인 것, 보편적, 합리적, 중앙집권적인 것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의 다양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감지하는 게 예민함이나 현상을 꿰뚫는 

심미안이라는 개인화된 능력의 유무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 문화이론가 그레고리 시그워스의 언급을 빌린다면

 ‘밤하늘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작은 개똥벌레의 강렬함을 뒤쫓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지역-청년-대안을 앞세우지 않고도 곳곳에서 제작되고 있는 새로운 지도는

 ‘개똥벌레의 밤과 대비되는 온 천지를 환하게 밝히는 햇빛 속에서 

미묘한 떨림부터 극심한 진동까지 그 반향들을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가 박솔뫼는 ‘부산스러움’과 무관한 방식으로 오랫동안 부산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래 지도’를 제작해온 바 있다. 

그 지도엔 뚜렷한 목적 없이 부산을 찾은 인물이 중구-동구-영도구 등 원도심을 배회하며 

보고 듣고 맛보고, 때론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며, 상상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가상 도시의 이름을 빌리는 경우도 있지만 소설 속 인물이 걷는 대부분의 길은 행정 지도를 펼쳐놓고 확인해가며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그런데 이 사실적인 지도엔 지역적 중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부산타워, 코모도호텔, 부산대교, 초량 차이나타운, 중앙동 골목과 광복동의 유명한 장소들은 랜드마크는커녕 

그곳을 배회하는 동안 눈에 자주 띄는 건물에 불과하다. 

여행자의 심드렁한 산책 속엔 부산을 소환하고 소비하면서 소외시키는 전형적인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소설 속 부산은 원자력발전소와 가까운 도시로, 공동체의 이방인으로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가려는 한 퀴어의 체류지로 묘사되는 등 

고착화된 지역 표상이 아닌 동시대성 속에 있다. 

때론 ‘장소의 오토픽션(autofiction, 팩션 장르)’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어디에도 기록된 바 없는 장소의 기억을 마치 꿈과 같은 필치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이야기를 통해 이어가는 지도 제작법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대표 기억으로 덮어버리는 통상적인 기념화 방식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기억과 시간을 겹쳐두는 방식을 취한다. 

그의 최신 장편소설 <미래 산책 연습>은 늘 걸어왔던 원도심 일대를 ‘미문화원 방화 사건’(1982)이 있었던 시공간과 겹쳐놓음으로써 

식민지기와 해방기 콘텐츠로 소비되며 빠른 속도로 고착화되고 있는 원도심을 정치적 장소로 전환해내고 있다. 

현재 근대역사박물관 자리에 있던 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던 당시의 대학생들의 동선과 감정을 재구성하며 

그들의 ‘기투’를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믿고 살아내며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겨 반복”하는 연습이자 훈련이라 재서술한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치지 않고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들이야말로 미래를 살고 있는 것’이라 말하면서 말이다.


일본의 텐트연극 운동가 사쿠라이 다이조는 ‘미래 기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이를 ‘오래된 과거지만 

지나간 일이 아닌 있어야 할 것을 앞당겨 현실화한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미래 기억의 함의를 따르자면 부산 혹은 로컬의 미래는 에코, 델타, 메가, 스마트라는 미지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전설 속 노아의 방주를 미래 기술로 구현한 해상신도시에 있지도 않다. 

그 미래는 어쩌면 이미 사라져 아득한 반딧불과도 같은 미래 기억들, 혹은 부산스러운 장소 표상으로 

그려낼 수 없는 장소들 속에 앞당겨 도래해 있다고 하겠다. 

박솔뫼는 ‘미래 기억’을 이렇게 다시 쓴다.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 

이 구절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생성되고 있는 새로운 지도의 일러두기 중 하나로 읽혔으면 한다. 

부산스러운 반경에서 지역의 중력과 싸우며 경계 너머를 기획하지만 여전히 희미할 뿐이어서 매번 지속할 수 있을지 심문하게 되는 오늘, 

하지만 이 감정들이야말로 와야 할 것을 살아낸 미래 기억의 부대낌이라 고쳐 써두고자 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89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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