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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여기는 부산이다, 아니다 (김만석)

젠더어펙트연구소
2021-06-03
조회수 536


한반의 반도 _6


요컨대 철책은 없앴으되, 보이지 않는 촘촘한 경계를 자본으로 세운 것이다. 그래서 해운대 바닷가에선 말주머니가 아니라 돈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이곳에선 건물 바깥에서 어딘가 ‘앉아 말을 나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관계’의 유지에서부터 ‘친밀성’과 ‘경관’은 적절한 돈을 주지 않으면 구매할 수 없는 공간으로 탈바꿈해버렸다. 

부산사람이 해운대에 잘 안 간다는 말은 주어진 공공재화를 ‘그저’ 누릴 수 없거나 강탈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로가 놓이면서 텃밭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땅 주인의 허락을 얻어 올해에도 고구마를 심었다. 

여든 중반이어도 작물을 키워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인지 고추 종자도 준비했다며 자랑을 한다. 

도로를 만들고 남은 땅이지만, 벌써 몇해 동안 옥수수는 물론이고 감자를 나누어 먹었으니 허기를 달랠 만큼 지력을 공유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부산이 메트로폴리스가 되면서 급속하게 ‘리조트화’된 동네인 철마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별로 남지 않았다. 

산비탈에 위치한 단층집의 울타리를 겸해 심은 매실을 함부로 따는 ‘시내’ 사람들을 해탈한 심정으로 봐야 할 만큼 ‘철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철마라는 지명은 분단의 상징인 그 철마(鐵馬)는 아니다. 

이곳은 부산 기장 해안에 인접한 산골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특촬물과 반공주의가 텔레비전에 요란할 때, 밤마다 앞산 너머에서 무장공비가 침투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야리아 부대가 유지되고 있던 80년대 중반까지도 마을의 이 산 저 산으로 미군들이 사격 훈련을 나왔고 덩달아 나도 부지깽이를 들고 ‘삽작거리’를 지키고 섰던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곳도 ‘국경’이었다. 

사격이 끝나고 버려두고 간 탄피를 주워 고물상에게 넘겨 ‘거금’을 벌기도 했던 친구 형들 가운데도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마을에는 자식들이 돌아다보지 않아 방치되는 빈집만 늘어나는 중이다.


2007년 정관산업로가 개통되면서 철마의 리조트화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2018년 부산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까지 개통되면서 이런 기조가 완전히 굳어졌다. 반공 마을은 시내 사람들을 위한 한우 마을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식당이라곤 면사무소 앞과 마을 초입에 있는 ‘점방’이 다였던 동네에 한우전문점들이 훈련병들처럼 곳곳에 진주해 있다. 

산 너머 일광과 인접한 산비탈에 골프장까지 들어서서 마을의 분위기는 종잡을 수 없게 되었다. 

농사는 시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밭을 매입해 더 열심인 형편이다. 

더 재바르게 부동산 컨설턴트들이 동네 노인들 속을 시끄럽게 만드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러니 마을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왔던 관계가 헐거워지거나 무의미해질 수밖에.


가령, 마을 어르신들이 15초가량 누군지를 가늠하면서 네가 끝 집 아들 아니냐고 할 때, 정답게 이을 말주머니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상업시설이나 위락시설이 들어오게 되면, 마을 이웃의 관계는 상인과 소비자의 관계로 바뀐다. 

물론 반공 마을 시절엔 낯선 사람들은 다양한 루트로 검증을 통과한 다음에야 공동체에 기입될 수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멀리 있는 마을 사람들 정보까지 다 꿰고 있어 간첩이 들어올 여지는 별로 없었다. 

이와 달리 반공 마을의 해체 과정에서는 이웃집에 그냥 ‘마실’을 갈 수는 없고 무언가 살 거리가 있어야 방문하게 된다. 

한우를 조금 더 얹어준다든가, 천엽이나 간을 더 끼워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딱 거기까지다.


그러니까 철마는 원래 살던 사람도 어떤 마을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되고, 시내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어떤 마을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곳이 되고 있다고 해도 좋다. 

우유를 생산하는 목장이 있긴 했어도 한우와 딱히 특별한 관계가 있지도 않았는데 철마한우축제까지 열리는 한우특화 마을이 되었으니, 이제 누구도 그 연원을 알려고 하지 않는 곳이다. 

심지어 면사무소엔 한우 조형물까지 떡하니 있어 원래 이 동네가 한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려니 하는 착각마저 든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축제 때 한우를 저렴하게 구입해 신나기도 했으나, 이런 정체 묘연한 지역 브랜드화는 시내 공무원들의 일방적인 기획으로 여겨져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국적’을 활용해서 ‘리조트’ 풍경을 초래한 시간이 지역 브랜딩 과정이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 철마에서 대략 10㎞ 반경에 있는 골프장이 부산권역으로 한정해도 7곳이다. 

이는 반공이 종료되어 형식적 경계가 와해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부산 해안선에 군사적 필요에 따라 둘러쳐진 철책들이 사라지면서 일대의 ‘개발’이 승인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동향보고(2018년 10월)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것이 해안선 막개발이었다. 

보고서는 “철책이 설치된 해안은 생태 및 경관 환경이 상대적으로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었다”고 적시하고 있다. 

“전국 해안 강안에 설치된 413㎞” 철책의 해제에 대한 대비가 무색하게 삽시간에 개발이 완료되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청사포에 무시무시한 위세로 자리 잡은 엘시티(LCT)는 그야말로 반공 유산의 새로운 적자로 우뚝 선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체제에서 이루어진 지역적 경계 혹은 블록의 단위가 신냉전 상황에서는 지역 내에서 브랜드 아파트와 건축물을 중심으로 지리적, 계급적, 문화적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반공의 철책선은 단지 입구에서 신분증명이 완료되어야 출입허가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통행 ‘위험’을 빌미로 택배기사의 출입을 제한하여 분통을 터트리게 만든 사례나 경비노동자들에게 갑질과 폭력을 당연하다는 듯이 행사하는 사례들은 적어도 출입 여부가 계급적, 계층적 ‘적대’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요컨대 철책은 없앴으되, 보이지 않는 촘촘한 경계를 자본으로 세운 것이다.


그래서 해운대 바닷가에선 말주머니가 아니라 돈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이곳에선 건물 바깥에서 어딘가 ‘앉아 말을 나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관계’의 유지에서부터 ‘친밀성’과 ‘경관’은 적절한 돈을 주지 않으면 구매할 수 없는 공간으로 탈바꿈해버렸다. 

위압적 규모의 건물들 틈바구니에서 사람들은 왜소해지고 공기, 바람, 볕과 온도와 같은 일체의 공공재화는 사유화되어 주어진다. 

이른바 해운대 바닷가에서 ‘셀카’가 넘쳐나는 것은 거기에 만만찮은 ‘비용’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회수하기 위해선 풍경 속에 자신을 두는 일만큼 적절한 ‘페이백’이 없을지 모른다. 

오션뷰 고층 숙박시설 유리창 앞에서 자신의 실루엣을 포착함으로써 말이다.


흔히들 부산사람이 해운대에 잘 안 간다는 말은 주어진 공공재화를 ‘그저’ 누릴 수 없거나 강탈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난이 태풍이 불어닥칠 때만 현실감을 갖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감지하는 일로 불쾌함을 넘어서 고통스러움을 유발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걷기가 가능한 동선조차 백화점을 중심으로 만들어질 뿐이다.


사실상 해운대는 군사시설의 이동을 통해 만들어진 신도시였다. 

해운대 신도시도, 센텀도 그러하다. 

각각 군부대와 군용공항이었다. 

해운대 해변과 이어진 기장 해변은 군사시설의 철거를 통해서 대대적인 휴양시설이 들어섰고 

앞바다를 사적 경관으로 끌어들이는 대규모 호텔이 들어서는 등 주변 항포구의 위축을 초래하는 상황이다. 

물론 기장은 부산에서 가장 많은 해녀들이 상주하는 곳이고 위락시설이 들어서거나 말거나 그녀들은 여전히 물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공공재화로서 바다를 아끼고 가꾸는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셈이다. 

그러므로 해녀들의 시야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 나와 이웃을 서로 돌볼 수 있을 테니까.


철마에 도시외곽도로가 건설될 무렵, 밭 둔덕에서 어머니가 우연하게 발견해 키우고 있는 ‘부지깽이’가 있다. 

울릉도 나물로도 불리는데, 향과 맛이 좋아 된장이나 소금에 무쳐 먹으면 좋은 봄나물이다. 

어머니는 멀리서 찾아온 나물을 알아보고 솜씨 좋게 키워내 올봄엔 누이네들에게도 풍성하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바다와 철책을 가로지르고 해안선과 사유화된 재개발지구를 넘어 철마에까지 도착한 부지깽이나물을 모른 척하지 않고 돌보는 수고로움이 나눔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그러니까, 기장 해변이나 철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외지인들을 돌보면서 나누는 과정에는 교환으로 셈해지지 않는 증여가 포함되어 있다.

 이곳 사람들이 아끼고 돌본 풍경이 그것이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자양분이 철마와 기장의 산과 바다다. 

그러니 함부로 파고, 짓고, 훼손하는 대신 이곳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놀러 와서 쉬고 먹는 데도 배움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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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7594.html#csidx690f91d1fbe54fd84af69e06cdb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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