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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부산을 떠나지 않기로 '선택'하다 (강희정)

젠더어펙트연구소
2021-06-16
조회수 661



부산을 떠난 지 2년도 채 안 되어 친구들은 서울사람이 다 되었다. 

높은 월세며, 지옥보다 더한 출퇴근길에 투박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부산에 돌아오고 싶어 하는 이는 없었다. 

서울과 부산, 그 사이에 놓인 약 400㎞의 거리. 우리는 전처럼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서로를 그리워하긴 했지만, 

그리움이 400㎞만큼의 현실적 격차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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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친구들의 발걸음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부산은 20대 여성이 살기에 그리 좋은 지역이 아니었다. 

출판사, 기획사, 언론사, 미디어 관련 산업 등 부산에는 인문학 전공자가 선호하는 일자리가 거의 없고, 사회적 분위기 역시 보수적 성향이 짙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결코 모르는 게 아니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떠나는 이들을 응원하는 일이었다. 

부산을 떠난 지 2년도 채 안 되어 친구들은 서울사람이 다 되었다. 

높은 월세며, 지옥보다 더한 출퇴근길에 투박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부산에 돌아오고 싶어 하는 이는 없었다.

서울과 부산, 그 사이에 놓인 약 400㎞의 거리. 우리는 전처럼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서로를 그리워하긴 했지만, 

그리움이 400㎞만큼의 현실적 격차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오래된 산업과 제조업 중심의 중소기업, 그리고 중화학공업 외에는 일자리가 드문 부산 경남 지역에서 여성의 취업 길은 대개 몇가지로 정해져 있다. 

그중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서울에 올라가 취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부산에는 문화산업 인프라가 거의 없다. 

또한 페미니즘과 성평등 문화에 관심이 적고 변화가 더딘 부산에서는 

결혼이나 취직을 하지 않는 이상 20대 미혼 여성에게 ‘독립’이라는 선택지는 거의 주어지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일반적인 생애주기를 밟지 않은 20대 미혼 여성이 ‘원하는 삶’을 꾸려나가기에 부산은 현실적 여건이나 사회적 인식이 뒤따라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그동안 도시의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청년일자리를 만들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문화산업은 재산업화를 통해 부산의 새로운 일자리 기반을 마련할 중요 거점이었지만 

부산은 지금껏 ‘문화 인프라가 없는 도시’다. 

원인을 하나로 특정하긴 어렵지만 문화산업 거점으로 중요 역할을 기대했던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나 영화산업 인프라와 관련한 최근 여러 사태는 부산의 청년일자리 문제를 선명히 보여준다. 

1996년부터 해마다 개최되어온 부국제는 부산 재산업화의 기반이 되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2018년, 계약직 스태프에 대한 체불임금 사태와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부산 청년들에게 행해지는 무보수 노동 등의 문제가 보여주듯, 

관련 전공자를 위한 일자리는커녕 영화제 지속을 위한 안정적인 예산 관리 및 운영 방식 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한 것이다.


부산시의 안일한 행정 방식은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창작인력육성시설 부산 분원 제안 거절 사태와도 연결된다. 

지난 5월, 부산 영화계는 영진위의 신진창작인력육성센터를 부산에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진위는 ‘부산에 수도권과 같은 영화 생태계가 없어 기존 영진위와 사업을 똑같이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실상 부산시가 인력 재생산을 위해 노력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다. 

이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산업적 권력관계가 지역을 어떻게 소모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국가균형발전의 일환으로 공공기관만 부산으로 이전했을 뿐이다. 

가장 시급한 부산의 인력 재생산 구조 마련은 뒷전이고, 해마다 지역 청년들이 임시 노동자로 소모되는 일은 방관하며, 

정작 필요한 시스템은 모두 서울로 올려 보내고 있는 것이 지금 영진위의 모습이다. 

그러니 청년들이 버틸 만큼 버티다가도 결국 서울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근래 미디어에 부쩍 늘어난 ‘로컬’ 관련 정책, 콘텐츠들에 반감이 드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몇년 사이, 정치권의 주요한 화두는 ‘청년’과 ‘로컬’이었다. 

20대 청년층의 지역이탈률 상승과 함께 출생률 저하로 인해 지방(지역) 소멸 및 인구절벽 문제가 더는 위기가 아닌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산 역시 청년 인구의 지역이탈 현상이 10여년 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었으나 별다른 대안을 발표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말, 부산 인구 340만명대 붕괴 소식과 함께 대규모의 대학 신입생 정원 미달 사태를 맞고 나서인 

지난 3월부터 ‘부산청년 귀환, 경력직 일자리 매칭사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최근 유명인을 내세워 지역을 소개하고 조명하는, 이른바 ‘로컬리티’ 예능과 지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영화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이러한 ‘청년

 유턴 정책’과 맞닿는다.


<1박2일>, <삼시세끼>부터 시작하여 <서울촌놈>, <맛남의 광장>에 이르기까지, ‘로컬리티’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의 포맷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유명인들이 나와 지역의 명소를 여행하거나 직접 수확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도시 스트레스와 피로를 해소하며 ‘힐링’한다. 

결국 도시와 달리 지역은 여유를 즐기며 살기 좋으니 ‘시골로 가서’ ‘힐링’하고, 

동시에 국가를 위해 지역에 활기도 불어넣으라는 게 지역 정책과 로컬 예능이 한목소리로 전하는 메시지다. 

가장 최근 방영하기 시작한 드라마 <라켓소년단>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현종’이 ‘오기만 오면 집도 주고, 월급도 쩜오배’로 준다는 말에 ‘서울서 다섯시간’ 거리의 해남에 마치 ‘유배’ 가듯 가서,

 배드민턴부를 지도하며 도시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농촌 생활에 점차 정붙여간다는 전형적인 ‘농촌 라이프’ 스토리로, 

그 서사 구조가 현재 청년 유턴 정책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정부와 미디어가 한목소리로 “지역을 되살리자”며 만들어내는 정책과 콘텐츠는 오히려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 십상이다. 

지역민의 삶을 보살피기보다 오로지 지역에 돈이 오가는 지표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이 쓰레기로 넘쳐나거나 구경거리로 전락하든 지역 상권이 로컬 예능 맛집으로 획일화되든, 

관광객이 많아져서 돈을 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 

지역정책과 미디어 산업이 합작해서 지역을 일회적 ‘방문지’나 순박한 힐링지, 맛집으로 환원하면서, 

지역은 오히려 정착해 살 만한 곳이라는 장소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더군다나 청년 귀환 정책은 지역의 유입인구 지표를 당장 늘리려는 근시안적 정책이자 

지역민을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으로 이분화하는 구조의 산물이다. 

‘지역에 남은 사람’은 패배자이거나 자율적 역량이 뒤떨어진다고 의미화하면서 

이미 ‘떠난 사람’들이 지역으로 돌아와 도전적 역량을 발휘하라는 방식의 담론 구조를 반복하는 것이다.


친구들을 따라 서울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는 부산에 ‘남았다’. 

올해 초, 부산에 있는 기업에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면서였다. 명란 제조 업체다. 

수산가공업이라는 부산의 전통산업 기반 위에 있는 중소기업이다. 

부산의 푸드 업계들이 음식 관련된 문화 기획과 이를 통한 지역인재 고용에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있지만, 

부산 청년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선호하는 일자리도 아니다. 

처음 취직 소식을 알렸을 때 가족, 친구 할 것 없이 취직을 축하해주다가도 금세 ‘거기서 대체 뭘 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정작 지역의 기반이 되는 업태가 오래된 산업으로 자연도태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스스로 부산에 ‘남았다’는 표현 또한 이런 자연도태 담론을 내면화한 것이다. 

지역에 ‘남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의 의미를 부정하는 말들과 만나는 건 그래서다. 

얼마 전, 회사의 홍보영상 촬영차 명란 공장 내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모두 20년에 가까운 경력의 숙련된 노동자였지만, 하나같이 하는 일에 대해 ‘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명란 한알이 만들어지기까지 여성 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해당 산업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의미가 없다거나 ‘사라질 것’으로 간주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어쩌면 그녀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그동안 누구도 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일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를 기억하고 해석해주는 이가 있는 사람의 삶은 더 이상 의미 없이 자연도태할 서사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 

차별을 재생산하는 의미 구성 체제를 깨트리는 다른 존재 방식을 만들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위치에 정치적 행위성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누구든, 어디에서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일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그래야 그저 ‘남았다’거나 ‘떠나지 않았다’가 아닌 부산에서 ‘살기’가 가능해진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94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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